한국 아이돌그룹의 원형을 만들고 케이팝의 아버지라 불리기까지 했던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설립자의 거취를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지금이야 하이브, JYP가 올라섰지만, 어쨌든 케이팝 가문의 가장 확보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던 SM인데, 현 상황은 너무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는 분위기다. 이는 SM이 최근 미래 비전을 발표하면서 27년간 이 회사의 프로듀싱을 총괄해 온 이수만의 퇴진을 공식화한 것이 발단이 됐다. 소속 아티스트의 반발과 내부 직원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 SM의 내분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성수, 탁영준 공동대표는 지난 3일 SM이 설립자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독점 프로듀싱 체계에서 벗어나 5개의 제작센터와 내·외부 레이블이 독립적으로 음악을 생산하는 ‘멀티 프로듀싱’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특히 이성수 대표는 “SM과 총괄 프로듀서로서의 계약은 종료됐지만, 여전히 주주로서 SM을 응원해주시는 이수만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이수만의 퇴진을 공표했다.
SM이 대주주의 퇴진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SM은 H.O.T.를 시작으로 신화, S.E.S, 동방신기, 보아, 소녀시대, 엑소 등 내로라하는 케이팝 스타를 배출했고 2000년 상장 이후 ‘1등 엔터테인먼트’ 타이틀을 놓친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2010년 후반에 들어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의 3세대 아이돌 시장이 형성되면서 엎치락뒤치락 하다 결국 2000년 이후로는 하이브와 JYP에 밀려 3위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7일 기준, 2조1450억원으로, 하이브(7조8365억)와 JYP(2조5487억원)에 이어 시장 3위에 머무르고 있다.
음원 판매량을 통해서도 SM의 현실이 잘 드러난다. 써클차트 연간 음반 판매량 TOP5 기준, 2012년엔 슈퍼주니어(1위)와 동방신기(3위), 샤이니(5위)까지 SM 소속 아티스트들이 상위권을 휩쓸다시피 했지만, 그로부터 10년 후인 지난해에는 NCT 드림의 ‘글리치 모드’(Glitch Mode-The 2nd Album)이 5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겨우 체면치레를 하고 있다.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체질개선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일부 관계자는 이수만이 SM의 제작에서 배제된다는 것에 반발했다. 대표적으로 소속 가수 겸 배우 김민종은 SM 전 직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수만 선생님을 위해, SM 가족을 위한다는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는 공표된 말과는 달리 선생님(이수만)과의 모든 대화를 두절하고, 내부와는 어떤 상의도 없이 일방적인 발표와 작별을 고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를 비롯한 SM 아티스트의 활동에는 선생님의 프로듀싱과 감각적 역량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수만의 퇴진을 반기는 분위기가 더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6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SM 게시판에는 ‘SM 3.0’에 대한 지지 의견이 올라왔다. 한 직원은 “4세대 (아이돌) 시대에 들어서면서 노래·콘셉트·마케팅과 조 단위 시총 주식회사로서 거버넌스가 세련되지 못하다고 느낀다”며 “큰 변화 없이는 시장에서 도태될 것 같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장도 환호했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SM은 전 거래일 대비 1200원(1.32%) 오른 9만2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에스엠 주가는 올해 들어 22.61% 급등했고 지난 2일부터 전날까지 3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이 같은 주가 상승 배경에는 SM의 새로운 프로듀싱 시스템 발표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에스엠에 대해 지배구조 개선에 따른 높은 이익 성장이 예상된다며 목표주가를 상향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목표주가를 기존 10만4000원에서 12만4000원으로 올려 잡았고, SK증권(9만4000원→12만원)과 다올투자증권(10만2000원→12만원), 메리츠증권(9만원→10만5000원) 등도 목표가를 높였다.
이 대표는 이수만 대주주의 처조카이고, 탁 대표는 매니저로부터 출발해 오랜 기간 이수만 대주주와 호흡을 맞춰온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이수만도 새로운 프로듀싱 시스템과 관련해 불편한 심기를 토로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공식적으로 그는 “물러나라는 소액주주들의 의견 또한 대주주로서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도리”(2022년 9월)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분을 겪는 와중에 SM과 카카오는 7일 오전 이사회를 통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카카오가 SM의 지분 9.05%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SM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발행하는 123만주 규모(주당 9만1000원, 2월 3일 종가)의 신주를 인수하고, 전환사채 인수를 통해 114만주(보통주 전환 기준, 주당 9만2300원)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카카오는 이번 계약에 2172억원 가량을 들여 SM 2대 주주가 됐다.
이수만은 즉각 반발했다.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화우를 통해 이날 “회사의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 등 회사 지배관계에 대한 영향력에 변동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제3자에게 신주 또는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하면서 위법한 결의에 찬성한 이사들에 대해 민·형사상 모든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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